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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에서 차기 대권주자...고(故)박원순 서울시장은 누구

  • [데일리안] 입력 2020.07.10 05:23
  • 수정 2020.07.10 07:02
  • 김소영 기자 (acacia@dailian.co.kr)

학생운동으로 서울대 제적당한 후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활동

201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장 당선

최소 3선 서울시장, 차기 대권주자로 꼽혀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청 홈페이지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청 홈페이지

고(故) 박원순 시장은 1956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를 거쳐 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한 후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나섰다가 긴급조치 명령 9호 위반으로 제적당했다.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됐으나 6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그후 고(故)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 인권변호사의 길을 밟았다.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말 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그는 1994년 참여연대 결성을 주도하면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특히 2000년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패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주도해 주목을 받았다. 또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새로운 시민단체를 잇따라 창립해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시민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2011년 당시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극적인 양보로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이 됐다. 이어 2014년 지방선거에선 서울시장 야권 후보로 출마해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은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며 박근혜 정부의 대처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처음으로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3선에 성공해 최초의 3선, 최장기 민선 서울시장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지난 415 총선에 측근 인사 10여명이 당선되면서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도 굳혀가는 중이었다. 지난 6월 민선 7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선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떄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서울시정을 10년간 이끌어온 그는 지난 8일 ‘서울판 그린뉴딜’을 발표하며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내다보는 야심찬 환경정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9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갑작스럽게 연락을 끊은 박 시장은 딸의 실종신고를 받고 수색에 나선 경찰에 의해 10일 새벽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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