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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픽] ‘미술계의 세종대왕’ 전각의 일인자, 정고암

  • [데일리안] 입력 2020.07.31 10:31
  • 수정 2020.08.07 07:35
  • 데스크 (desk@dailian.co.kr)

정고암 작가 ⓒ갤러리K 제공정고암 작가 ⓒ갤러리K 제공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이 서로 맞지 않으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구나. 내(세종대왕)가 이를 안쓰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모든 사람이 이것을 쉽게 익혀 편하게 사용했으면 하노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3년 뒤 훈민정음 언해본을 발간하면서 서문에 적은 말씀이다.


‘마음에 새겨라, 가슴에 새겨라.’

고암 정병례(작가명 정고암)는 어떤 것을 기록하고 기억한 뒤 이것들을 모아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거나 발견하기 위해 ‘새김아트’라는 장르를 창시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가슴에 새기라는 의미로, 세종대왕의 정신을 이어받아 전각 작품에 한글을 새겨넣는 예술을 창시했다.


정고암 선생은 말한다. “새김아트의 ‘새김’은 기본적으로 돌이나 나무, 기타 물질에 새기는 것을 의미하지만 마음과 정신, 나아가서는 우주에도 새깁니다. 영적 의미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또한, 새김은 ‘사귀다’의 준말입니다. 사전적 어법의 준말은 아니고 제가 만든 말입니다. 작품과 관객과의 새김(사귐, 사귀다), 소통을 의미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와의 새김도 사귐을 의미합니다”.


새김아트는 인류문명의 시작이며 미래다. 인류는 생존하는 순간부터 문명의 흔적(痕迹)을 새겨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흔적은 인간의 삶과 함께 면면히 이어져, 이랑과 고랑으로 남아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완연한 시기에 땅을 갈아엎어 이랑과 고랑을 가르는 이치는 마치 칼이나 끌을 들어 음양을 가르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보이는 세계와 가려진 세계로 나뉘는 순간 양성적 에너지와 음성적 에너지가 어우러지는 찰나만이 존재할 뿐. 그러하기에 유와 무의 세계가 서로를 품는, 현상세계를 이랑과 고랑으로 이어온 ‘새김예술’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인장과 같은 형태의 전각, 그 역사는 중국으로부터 전래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정고암 작가는 생각을 달리했다. 예술적 관점에서 본다면 전각은 작가의 사상과 철학을 어떻게 내재하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이 될 수 있고, 보이는 세계와 가려진 세계가 어우러져서 새로운 세계를 이룬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 작가는 그 세계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거나 발견하기 위해 절차탁마했고, 한글의 특성을 디자인화해도 금방 읽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보이는 세계(有)와 가려진 세계(無)가 어우러져 현상세계를 이룬다(相生)는 건 어떤 것일까. 우선 잘 배치된 물고기나 태양, 강, 산, 물결 등의 문양만으로도 관전자의 시각을 사로잡는다. 보이는 세계다. 하지지만 빙산의 일각만 본 것이지 바닷속에 가려진 거대한 실상(한글)은 마술에 걸린듯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 이대로 보기만 해도 좋다. 꼭 한글을 읽기 위해서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관람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림을 새겨진 대로 본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았기 때문에 한글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작가의 사상과 철학적 사유의 결과, ‘작은 공간에 광활한 우주질서가 한글을 통해’ 담겼다. 정고암 작가는 새로운 한글 상형문자의 창안이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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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30호 ⓒ갤러리K 제공

‘사랑’이라는 작품을 봤을 때 물고기와 산, 회오리바람과 별자리가 등장한다. 한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선 한글이 작게 새겨져 있는 건 아니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9개의 사각작품이 붙어있다. 첫 번째 줄의 ‘가운데 사각틀’에서 물고기를 지우면 ‘ㅅ’ 형태가 나타난다. 다시 그 오른쪽 사각틀에서 물고기를 지우면 ‘ㅏ’가 보인다. 합하면 ‘사’.


두 번째 줄의 맨 왼쪽 사각틀 역시 물고기를 지우면 ‘ㄹ’이 되고, 바로 옆 사각틀에서는 ‘ㅏ’가 나온다. 세 번째 줄, 가운데 틀 소용돌이 모양의 작품은 그대로 ‘ㅇ’이다. 역시 합하면 ‘랑’. 작품 안에 ‘사랑’이라는 글자가 숨어있다.


정고암 작가의 전시회에서는 신선한 풍경이 연출된다. 작품을 보러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들에게 작품을 소개하며 한글 찾는 법을 알려준 뒤, 다른 작품으로 가서 글자 찾기를 한다. 어른들 역시 아이들과 우리말 찾기를 하며 작가가 그림에 담은 철학을 자연스럽게 느낀다.


정 작가가 전각 작품에 한글을 새겨넣은 예술은 처음 전각을 시작했던 1980년대 초반부터 이뤄졌다. 전각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한글작품 ‘뿌리깊은 나무’가 2007년도에 소장됐다. 다른 이와 구별되는 확고한 정체성이 화풍과 작법을 통해 구현되고 발견될 때 우리는 그를 작가라고 부른다. 정 작가는 말한다. “어디에 내놔도 내가 정고암이고, 한국놈이고, ‘코리아 놈’이라는 것을 그림이 스스로 증명한다”. 정고암 작가가 세계적 작가로 거듭나고 있는 이유다.


정고암 작가/ 2018 벤틀리 코리아 에디션 콜라보, 상하이문화원 초대전, 창원조각비엔날레 초대작가, 2017 감사원 옹벽 전각벽화 제작, 2016 벨기에 브뤼셀 주유럽연합 한국문화원 특별초대전, 2015 청와대 신년인사회 무대작품 양평군립미술관 가족일기전, 2014 이스탄불 아트페어 대표작가, 2014 개천절 한글날 경축식무대 실외작품, 2013 이스탄불 아트페어 대표작가, 2010 MBC방송연예대상 예술원 작가, 2010 제5회 서울드라마어워즈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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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성찬 갤러리K 큐레이터asc11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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